쌍효각(雙孝閣)



송재공(松齋公) 휘(諱) 명천(命天) 23세
서산공(書山公) 휘(諱) 명찬(命燦) 23세
위각(爲閣)

 

23세(世) 휘(諱) 명천(命天) (1762-1835) 본(本) 쌍효각(雙孝閣)은 명천(송제공)(命天(松齊公))과 23세(世) 휘(諱) 명찬(서산공)(命燦(書山公))을 모신 각(閣)으로 두분은 재종간(再從間)이었다.
휘(諱) 명천(命天)은 현감 이억(縣監 以億)의 12대손(12代孫)으로 자(字) 천보(天甫) 호(號) 송제(松齊) 영조(英祖) 임오(壬午) 1762년생(年生) 6세(歲)때 부친(父親)을 여의고 편모(偏母) 슬하(膝下)에서 자랐는데 성장(成長)한 후(後) 다른사람이 부모(父母)의 당상(當喪)에 상복(喪服)을 입고 거상(居喪)함을 보고 감동(感動)하여 추복(追服)으로 시묘(侍墓)를 살았는데 까마귀 한 쌍(雙)이 묘수(墓樹)에 둥지를 틀고 6년(年)동안 동거(同居)하였다.
어느날밤 꿈에 현몽(現夢)하기를 나는 삼각산(三角山) 신령(神靈)인데 팔방(八方)을 둘러보았지만 그대같이 진실(眞實)된 마음을 보지 못하였다. 그대는 마땅히 나를 위하여 수고 할 지어다.하고 홀연(忽然)히 사라졌다.
이러기를 연(連) 3번 거듭하기에 관(官)에 고(告)하면서 국가(國家)에 망극지통(罔極之痛)이 있을것이라고 하였더니 공(公)을 요사(妖邪)한 말이라하여 결박(結縛)하고 19일간(日間) 투옥(投獄)하였다.
과연(果然) 국상(國喪)이 생겨 정조 대왕(正祖 大王)께서 승하(昇遐)하시자 공(公)은 사면(赦免)되어 설단배곡(設壇拜哭)하고 3년간(年間) 방립(方笠)을 쓰고 상신(喪身)의 예(禮)를 행(行)하였다.
이후(以後) 사림(士林)에서 공(公)의 충(忠)과 효(孝)를 상달(上達)하여 광서 13년(光緖 13年) 1887년 동몽교관(童蒙敎官)을 배수(拜受)받아 이어 다시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정여(旌閭)를 명(命)하였다.
휘(諱) 명찬(命燦)은 자(字) 성은(聖恩) 호(號) 서산(書山) 1804년(갑자(甲子)) 2월(月) 18일생(日生).
모상(母喪)에 추복(追服)으로 3년간(年間) 려막생활(廬幕生活)을 할때는 대호(大虎)가 수행(隨行)하고 야작(野雀)이 묘당(墓堂)에 언제나 날아와 앉아서 묘역(墓域)을 해(害)하는 미물(微物)을 막아 보호(保護)하였다.
국상(國喪)이 있을때마다 설단(設壇)하여 배곡(拜哭)하였으며 방립(方笠)을 쓰고 3년간(年間) 거상(居喪)하였다.
공(公)의 충의(忠義)와 효행(孝行)을 왕(王)께서 들으시고 높이 칭송(稱頌)하고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追贈)하고 정여(旌閭)를 명(命)하였다.
경효사(景孝祠)에 배향(配享)되고 3월(月)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함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궁면 덕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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