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도씨본관연혁(구보소재)
성주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살펴보면 성산가야(星山伽倻)인데 이는 육가야(六伽倻) 중의 하나이다. 신라(新羅)가 병합하여 본피현(本彼懸)을 두었고 경덕왕(景德王, 742~765)은 신안(新安)으로 개명(改名) 하였다가 성산군(星山郡)으로 하였으며, 뒤에 벽진군(碧珍郡)으로 고치었다. 고려(高麗) 태조23년(太祖二十三年, 940)에 다시 경산부(京山府)로 하였고, 경종6년(景宗六年, 980)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하였으며, 성종14년(成宗十四年, 994)에는 대주도단련사(岱州都團鍊使)로 일컬었고, 현종3년(顯宗三年, 1012)에 단련사(團鍊使)를 폐지하였으며, 현종9년(顯宗九年, 1018)에 경산부(京山府)로 개칭하였다. 충열왕21년(忠烈王二十一年, 1295)에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로 강격(降格)하였으며, 충열왕34년(忠烈王三十四年, 1308)에 다시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급(陞級)하였다. 충선왕2년(忠宣王二年, 1310)에 경산부(京山府)로 강등되었고 이조태종조(李朝太宗朝, 1401~1419)에 어태(御胎)를 경산부(京山府)의 조곡산(祖谷山)에 모심으로써 목(牧)으로 승급(陞級)하였다.

팔거연혁
팔거(八莒)는 본시(本是) 신라팔거현(新羅八莒縣)으로서 일명 인리(仁里)라 하고 별호로 칠곡(七谷)이라 하였으며 경덕왕(景德王)은 팔리(八里)로 개명(改名)하여 수창군(壽昌郡)에 귀속시켰다(금대구부남(今大邱府南)으로 십이리(十二里)의 수성속현(壽城屬縣)∧현 대구직할시 수성구 일원지역 관할∨). 고려(高麗)는 다시 팔거(八莒)로 고쳐 부르다가 거자(居字)를 거자(莒字)로 전환하였고, 현종(顯宗, 1010~1032)때 경산부(京山府) (금(今) 성주(星州), 팔거(八莒)∧칠곡(漆谷)∨에서 서(西)로 칠십이리거리(七十二里距離))에 소속하였고, 조선 인조조(仁祖朝, 1623~1650)에 가산성(架山城, 일명 기성(箕城), 현영(縣營)에서 동북 이십리에 위치)을 축조함으로써 진(鎭)을 두고 칠곡(七谷, 현(縣)의 별호(別號)에서 취명(取名)) 도의부(都議府)를 별설(別設)하였다(야소(冶所)는 내성(內城)에 있었다).

※ 칠곡(漆谷)‥칠(漆)은 혹 칠(七)로도 쓰는데 팔거현(八莒縣)의 별호(別號)이다. 제종(諸宗)의 선세보첩상(先世譜牒上) 사적(事蹟)에는 모두 칠곡군(七谷郡)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군명(郡名)이 언제부터 일컬어졌는지 알 수 없다.

팔거기지고
세전(世傳)에 의하면 도씨(都氏)의 구거(舊居)는 노상(路上)과 노하(路下)라는 설이 있다. 로상(路上)은 곧 대구파(大邱派) 선대의 세거지이며, 지금의 칠곡향교(漆谷鄕校) 기지이다. 일시 찬성공(贊成公)의 화변(禍變)으로 이피(移避)하였던 이후에도 대를 이어서 수호하였으며, 숭정십삼년 경진(崇禎十三年 庚辰, 1640)에 도호부(都護府)를 별설(別設)할 때 사림(士林)이 기지(基地)를 청하므로 허락하여 주었다. 로하(路下)는 성주파(星州派) 선대가 세거하였다고 하니, 그 곳을 상세히 알 수 없다.

본관고
팔거(八莒)는 옛 성주(星州)의 속현이고 나누면 칠곡부(七谷府)이므로, 그 후 자손이 팔로(八路)에 분거(分居)하여 살지라도 거(莒, 팔거(八莒))․ 성(星, 성주(星州))․ 칠(漆, 칠곡(漆谷))을 호상(互相) 관(貫)으로 썼으나 지금은 예읍(隸邑)의 호(號)가 성주(星州)로 정하여져서 본관으로 삼는 것이니, 무릇 동방의 도성(都姓)은 다른 관이 있을 수 없다. (부원군(府院君) 휘진(諱陳)께서 수봉(受封)하였기로 관(貫)으로 삼는다)


계사대동보(癸巳大同譜, 2013년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