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죽각(白竹閣)



정부인달성서씨[8세 휘(諱) 운봉공(雲峯公)의 배위(配位)]의 열녀사적을 표창한 세종의 어제시와 행장을 명각(銘刻)한 정려비각(旌閭碑閣)

 

세종 22년(1440년) 효령면 병수1리(속칭 관동(官洞) 잉여골) 도로변에 건립.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 조정의 복구령에 따라 영조8년(1732년)에 재건.
정조 20년(1796년) 현 위치에 이건.

정부인 열녀 서씨 사적

고려 우왕 14년(1388년) 경상도에서 태어난 서씨 부인은 어릴 때부터 효행으로 유명하였다. 태종 12년(1412년) 고려 충신 청송당(靑松堂) 휘(諱) 응(膺)공의 제4자인 운봉(雲峯)공과 결혼하여 군위 성동으로 이사하였다.
서씨 부인은 28세 되던 태종 16년(1416년) 부군을 여의고 17년간이나 후원의 대숲에서 슬퍼하던 중에 세종 15년(1433년) 봄, 흰 대(백죽) 세 포기가 돋아나는 이적(異蹟)이 있었다.
세종 20년(1438년) 서씨 부인 50세때 세종대왕은 백죽도를 그려 올리도록 하고, 그해 7월 복호(復戶 : 조세, 부역 등을 면제), 정려[旌閭 :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녀(烈女) 등이 살던 고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케 하고 아울러 정부인 첩지와 어제시(御製詩) 2수(首)를 내리었다.

 

소재지 : 경북 군위군 효령면 성리 101번지 전(田)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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