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당공(靑松堂公) 휘(諱) 응(膺) 7세
위재(爲齋)
7세(世) 휘(諱) 응(膺)(1343∼1400전후) 청송당 선생의 학덕과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이 건립.
원래의 건물은 1886년에 소실되고 그 해에 재건하였다. 현존건물은 1960년 10월 8일에 허물고 재건하였다.
휘(諱) 응(膺)공의 초휘(初諱)는 유(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 노은(魯隱) 또는 청송당(靑松堂)이다. 고려말 충신(高麗末忠臣)으로 두문동(杜門洞) 72인 중 한사람이다.
고려 공민왕(恭愍王)때 중대광문하시중찬성사(重大匡門下侍中贊成事)를 역임하였는데, 이성계(李成桂:1335~1408)가 새 왕조를 창건한 후 다섯 차례에 걸쳐 관직(官職)에 소명(召命)하였으나 끝내 실직(實職)에 응하지 않았다. 태조가 그 충성과 절의를 아름답게 여겨 청송당(靑松堂)이라는 호를 내리고 절구시(絶句詩)를 하사(下賜)하였다.
소재지 : 충남 예산읍 응봉면 지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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