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世 휘(諱) 응유(應兪) 자(字) 해보(諧甫) 호(號) 취애공(翠厓公)의 묘(墓)



증병조참판(贈兵曹參判) 휘(諱) 원량(元亮)(17世)의 장자로 선조(宣祖) 7년(1574) 갑술생이시며, 조(祖)는 경상좌도병마우후(慶尙左道兵馬虞侯) 흠조(欽祖)이시며, 자는 해보(諧甫), 호(號)는 취애(翠厓), 휘(諱)는 응유(應兪)로 성균생원(成均生員)이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 및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선생 양문에 사사하여 문장과 덕행이 당세에 추중되었으며, 1606년 인흥에 인흥정사(仁興精舍,현 東溪書堂)를 짓고 장여헌(張旅軒), 손모당(孫慕堂), 이석담(李石潭) 등 제현과 벗이 되어 학문을 닦기도 하였다.
 1611년 정인홍(鄭仁弘)의 오현종사(五賢從祀)의 논의에서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 퇴계 이 황(退溪 李 滉) 두 선정을 무고하자 그 부당함을 변파하였고(회퇴변정(晦退辨正)), 박이립(朴而立)이 한강(寒岡)을 모함하자 상소하여 스승의 억울함을 해명하였다(한강변정(寒岡辨正)). 계축년(1613) 증광사마시(增廣司馬試)에 급제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분의도유사(奮義都有司)로 천거되었고,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시에는 정경세(鄭經世)를 도와 상장으로 추대되어 활약하였다. 또한 기축옥사(己丑獄事)(1589년)로 희생당한 남명(南冥)의 문인인 최영경(崔永慶)을 위하여 "최수우당영경변무소(崔守愚堂永慶辨誣疏)"를 올려 풀려나게 하기도 하였다.
또한 장문의 축성선장(築城選將)의 책략을 입안 상주하였으며, 선생은 경험적 세계의 현실문제, 사회문제보다 도덕적 원리에 대한 인식과 그 실천을 중시하였다.
 한강(寒岡)이 예설을 모아들일 때 예서를 잘 쓰는 그에게 맡겨서"송조오현예설집(宋朝五賢禮說集)"의 편질을 완성하게 하였으며, 기묘 1639년 4월에 졸하였으며, 묘는 대구 송현동에 장하였으나 무오 1978년에 청도 각북면 율정 가동산 갑좌로 이장하였다.
 무자 2008년 묘하 백여보 지점에 동강재(東岡齋)를 마련하여 묘재로 사용하고 있다.
문집으로 "취애집(翠厓集)"이 있으며, 병암서원(屛巖書院)에 아우 낙음(洛陰) 경유(慶兪)와 함께 배향되었다.

소재지 : 경북 청도군 각북면 율정리 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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