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문중(龍湖門中) 묘지명_01

병마우후부군 흠조(欽祖) 묘지명(墓誌銘)

 

< 어모장군 행 경상좌도 병마우후부군(:흠조) 묘지석 >

공의 휘는 흠조(欽祖). 자는 경선(敬先)이니 그 선조는 성주 사람이다시조 휘 미()는 백제 개루왕(蓋婁王)때에 벼슬을 하였으니 사적이 삼강행실록에 보인다

 

그 후에 휘 진()은 칠곡 부원군이다

휘 순(). 휘 충박(忠朴). 휘 유도(有道)가 계셨으니 삼대를 연이어 공조전서(工曺典書)와 전리상서(典理尙書)를 지냈다자손은 대대로 고려조를 섬겨서 벼슬이 끊이지 않았다고려말에 공조전서(工曺典書) 휘 항()이 계셨으니 곧 공의 5대조이다증조 휘 윤안(允安)은 소위장군(昭威將軍) 이다조부 휘 의문(義文)은 첨사(僉使)이다부친 휘 순경(舜卿)은 덕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았다모친은 곤산류씨(崑山柳氏) 이니 증병조참판 휘 소창(沼昌)의 따님이다

 

공은 정덕(正德) 1515(을해)년에 나셔서 가정(嘉靖) 1535(계해)년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49세이다처음에 무관으로 천거되어 인차외만호(仁遮外萬戶)에 제수되었다옮겨져서 경상좌도병마우후(慶尙左道兵馬虞侯)에 제수되었는데 부임하기 전에 돌아가셨다칠곡 오곡(梧谷) 건좌(乾坐) 손향(巽向) 등성에 장사지냈다

 

숙인은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니 광평군(廣平君) 휘 능()7세손이다부친 휘 수문(秀文)은 교위(校尉)이다조부 휘 회()는 무과에 급제하였다증조 휘 적상(迪祥)은 한산군수(韓山郡守)이다모친은 탐진유씨(耽珎兪氏)이니 은거하고 벼슬하지 않은 휘 응하(應夏)의 따님이다부인은 정덕(正德) 1523(계미)년에 태어나서 만력(萬曆) 1601(신축)년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79세이다공의 묘에 합장하였다

 

아들이 넷인데 원국(元國). 원결(元結). 무과에 급제하여 군수가 된 원량(元亮)이고마지막은 원례(元禮)이다

 

딸은 하나인데 순천(順天) 박이현(朴而絢)에게 출가했다손자는 여섯이니 성유(聖兪). 생원 응유(應兪). 무공랑 여유(汝兪). 언유(彦兪). 무과에 급제하여 판관이 된 이유(以兪). 평양서윤(平壤庶尹) 경유(慶兪)이다손녀는 셋이니 감사 남선(南銑), 사인(士人) 전이성(全彛性), 박용(朴鎔)에게 출가했다증손은 아홉이니 신휘(愼徽), 문과에 급제한 신수(愼修), 신위(愼衛). 진사 신여(愼與), 신의(愼儀), 신행(愼行), 신징(愼徵), 신형(愼衡), 신중(愼中)이다박이현은 남을 두었으니 종서(宗緖), 영서(永緖), 흥서(興緖), 윤서(潤緖)인데 영서는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通政) 이 되었고윤서는 무과에 급제하여 현감이 되었다내외의 자손들이 3백여 명이다

 

공은 효성스럽고 우애로우며 너그럽고 인자하였다기국(器局)이 원대하여 재주가 세상에서 쓰일만했는데도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났다부인은 부덕이 단정하고 규범이 엄숙하여 여러 자식을 잘 가르치고 길러서 집안의 명성을 실추시키지 않았으니자손이 번성하고 대대로 화목함을 돈독히 하는 것은 대개 그 까닭이 있는 것이다

 

공의 장사를 지낸지 80여년이 지났다성유(聖兪)등이 훗날 고찰할 것이 없을까 크게 두려워하여 삼가 슬픔을 머금고 대략을 기록하여 불후함을 드러내고 마침내 명을 짓는다

 

명은 다음과 같다

 

면면히 이어지는 우리 도씨는 백제와 고려에 혁혁 하였네

우리 공에 이르러서 그 아름다움을 이루게 되었네

하늘이 덕을 주었으나 수명을 주지는 않았네

 

그 부인께서 그 짝에 마땅 하였네

공은 현달하지 못하고 막혀서 이로써 우리에게 은혜를 끼쳤네

우리 손자와 증손들이 대대로 보답을 받았네

 

너희가 그유래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너희가 드날릴 수 있겠는가

높은 이 언덕에 무덤이 매우 빛나네

경건히 가정의 가르침을 본받아야 하리니 어찌 감히 혹 쇠하게 하겠는가

 

 

숭정 91636(병자)8월 모일에

증손 통훈대부 호조정랑겸 춘추관기주관 신수(愼修)는 삼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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