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문중(龍湖門中) 묘지명_02

 

한성부우윤 원결(元結) 묘지명(墓誌銘)

 

< 증 가선대부 한성부우윤 겸 동지의금부사부군(:원결)의 묘지석 >

 

 

공의 휘는 원결(元結)자는 충경(忠卿)이고 본관은 성주이다. 비조 휘 미()는 백제에서 벼슬하여 이름을 드러내었다. 그 후에 벼슬이 끊이지 않아 칠곡부원군 휘 진()휘 순()휘 충박(忠朴)휘 유도(有道)가 있었으니,모두 경상(卿相)의 지위에 올랐다. 대조 휘 항()은 고려 말에 관직이 공조전서(工曺典書)에 이르렀다. 증조 휘 의문(義文)은 첨사(僉使)를 지냈다. 조부 휘 순경(舜卿)은 벼슬하지 않았다. 부친 휘 흠조(欽祖)는 우후(虞侯)를 지냈다. 모친 숙인 성산 이씨(星山李氏)는 광평군(廣平君) 휘 능()대손이고 병절교위(秉節校尉) 휘 수문(秀文)의 따님이다.

공은 가정(嘉靖) 1551612일에 태어나고 만력(萬曆) 159347일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43세이다. 칠곡 오곡(梧谷) 건좌 손향 등성의 선영 서쪽 첫째 언덕에 안장하였다.

 

정부인(貞夫人)은 부계 홍씨(缶溪洪氏)이니 사인(舍人) ()의 현손이고 증 참의 제문(悌文)의 따님이다. 부인은 가정(嘉靖) 1584713일에 태어나고 만력(萬曆) 161328일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66세이다. 공의 묘 동쪽 가에 합장하였다.

 

공은 효성과 우애에 있어서 대개 천성이어서 그 도를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덕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고서 가정에서 행하였고 여러 아우와 자질들을 가르쳐서 여기에 힘입어서 성취된 이가 많았다. 비록 몸이 드러나지 못하고 궁하게 지냈지만, 마을에서 모두 선인이라고 칭송하였는데 불행히 수명이 짧았다.

 

부인은 성품이 어질면서도 부드러워서 부도를 깊이 얻었고 일을 처리할 때 어긋남이 없었다. 덕을 심고 선을 쌓아서 오로지 이로써 마음을 삼았으니,곧 종족과 인척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뻐서 복종하여부인이 훗날의 경사가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아들 하나는 여유(汝兪)이니 무공랑(務功郞)이다. 무공랑은 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문과에 급제한 신수(愼修), 진사 신여(愼與)학문을 일삼은 신행(愼行)과 신징(愼徵)이다. 딸은 하자수(河自洙), 이분(李棻), 이안적(李安迪)에게 출가했다. 공은 측실에게 두 아들 명유(命兪), 득유(得兪)를 두었는데 모두 무과에 급제하였다. 내외의 여러 자손이 50여명이다.

 

공이 돌아가신지 40여 년이 되는데 묘도(墓道)에 아직 비석이 없다. 불초손 신수(愼修)는 조부의 행적이 민멸되어 전해지지 못할까 삼가 두려워하여 감히 명을 짓는다.

 

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 조부를 내가 아노니

그 덕성과 행실은 누군들 이만할 수 없었네

능히 그 아름다움을 짝함은

내조한 조모의 마땅함 일세

 

아름다움이 있는데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 불초손의 허물을 무겁게 하리라

넘치지 않고 바른 말이니

이로써 우리 후손에게 고하네.

 

 

숭정(崇禎) 병자년 월 모일에

손자 통훈대부 행 호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 신수(愼修)는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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