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문중(龍湖門中) 교지_01

신여(愼與) 통훈대부(通訓大夫) () 사복시정(司僕寺正) 교지

 

< 사복시정(司僕寺正) 신여(愼與)의 교지 >

 

 

 

영조43(1767) 증손(曾孫) 계상(啓祥)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2)가 됨에 추증된 교지이다. 신여공은 생전에도 품계가 정 3품인 통훈대부였으나 관직이 정오품에 해당하는 예조정랑이어서 정삼품에 해당하는 사복시정으로 추증하였다.

 

의법전(依法典)’의대전(依法典)’은 당상관처고신식(堂上官妻告身式)과 추증식(追贈式)에 사용되었는데 의법전(依法典)’전록통고(典錄通考)”가 반포된 후 1691년부터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추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문무관 이품(二品) 실직(實職) 이상자의 삼대(三代)였으므로 추증의 원인을 제공한 관직자(根因者)와 그 관직, 또 그 근인자와 추증을 받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한지가 포함되어야 했다. 이때 기재 순서는 추증 근인자의 관직과 성명을 쓰고 추증 받는 자와의 관계를 기록한 뒤 추증받는 자의 관직을 기재하는 순이다. 증조(曾祖)부모와 조부모의 경우는 본인보다 한 품계 낮게 추증하였다. 계상공의 경우 삼대에 걸친 추증 교지 모두가 보존되어 있다.

 

敎旨

通訓大夫行禮曺正郞兼 春秋館記注官都愼與贈通訓大夫司僕寺正是正者

乾隆三十二年十二月二十日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都啓祥曾祖考依法典追 贈

 

도신여(都愼與) 1605~1675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인데 생부(生父)가 서재공(鋤齋公) 도여유(都汝兪)이고 양직당 도성유(都聖兪)의 계자(系子)이다. 1633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신묘(1651)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용담(龍潭), 김제(金提)등 현감을 역임하고 숙종 을묘(1675)에 성균사예가 되었고 향년 71세에 졸하다.

 

영상 허적(許積)과 이판 오시수(吳始壽)가 염습을 하고 상여 운반에 100여인이나 투입되었으며 영이(靈輀)가 하사되었고, 국풍이 연을 띄워 잡은자리(신령 화산 정상)에 묘터를 잡았다 한다. 갈암 이현일(李玄逸)이 갈문을 짓고 부사 박명섭(朴明燮)이 문집 서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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